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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9
애니/영화 | 09/09/26 03:43
디스트릭트9에서 가장 재밌는 것은 이것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왔다는 것이다. 클로버필드가 UCC였다면 디스트릭트9은 방송의 형식을 차용한다. 둘 다 저예산으로 박진감 넘치는 연출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디스트릭트9은 클로버 필드보다 고도의 수법을 구사하고 있다.


UCC는 단순한 개인기록물로 하나의 도시신화로 받아들여진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이 캠코더 화면에서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반신반의하게 되도록 학습이 되어있다. 저화질은 무언가를 꾸미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에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믿지 않게되고, 논란에 휩쌓이게 된다. 유튜브의 영상이 자주 뉴스기사로 나오는 것은 특유의 비쥬얼 때문이다. 클로버필드는 이 연장선상에서 거대한 괴물을 보여준다. 마치 내가 그 혼란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효과도 있지만, 투박하고 흔들리는 저화질 화면에서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고 믿기에 더욱 긴장하게 된다.


이것에 비하면 디스트릭트9은 약간 오래된 스타일을 구사한다. 방송카메라는 UCC 이전에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화면이다. 이것도 투박하고 흔들리는 저화질의 화면이지만, 언론사의 시선은 '사실'을 '의도'로 포장하는 역할을 한다. 어디선가 분명히 일어나는 장면이지만, 그들의 교묘한 편집을 통해 자신들의 메세지를 숨겨놓는다. 대중의 의심을 흔들리는 화면으로 열어놓는 것이다.


즉 디스트릭트9의 화면은 영화라는 가짜를 진짜처럼 믿게 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미 대중은 이런 화면에 익숙해져있으며, 형식적인 효과를 기대한다면 차라리 클로버필드가 더 효과적이다. 게다가 영화는 온종일 뉴스 화면으로 도배하지도 않는다. CCTV 화면을 이용하기도 하고, 정말 픽션을 보여주는 영화카메라도 사용한다. 다양한 층위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치는 흔들리는 UCC 화면이 주는 현기증을 대신 만들어준다. 우리가 디스트릭트9을 보면서 어지럽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뉴스화면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카메라의 종류 때문일 것이다.


디스트릭트9이 한물간 방송카메라를 들고 나온 이유는 페이크 다큐를 만드는 형식상의 이유라기 보다는 언론의 역할을 증명하는 메시지상의 이유라고 봐야 한다. 디스트릭트9 웹사이트를 가보면 영화 속에 나오는 가상의 기구(MNU)의 홈페이지가 있고 외계인과 인간을 위한 바이링걸 블로그도 있다. 교육기구는 실제 교육기구 홈페이지의 투박함을 그대로 가져왔다. 실제 웹사이트같은 영화 홍보 페이지들은 디스트릭트9이 채용한 방송카메라와 층위를 같이하고 있다. 즉, 영화를 현실에 있는 것처럼 포장함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는 사회학적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난민이 된 외계인의 현실을 증명한다. 겉으로 보기엔 위험하고 멍청하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이것은 외계인의 속성이 아니라 외계인이 처한 계급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그들이 난민이 되기 전에는 엄청난 기술문명을 이룩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진국 국민들도 수용소에 집단으로 몰아넣으면 도시빈민층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그리고 대중은 그들을 외계인으로 대접하기 보단 골칫덩이 빈민층으로 인식한다. 더럽고 위험한 존재이다.


대중이 외계인을 프런이라 부르며 멸시하는 것은 그들을 빈민층으로 계급을 설정한 정부정책과 방송의 힘이 크다. 정부는 외계인의 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 외계인을 빈민층 계급으로 전락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수용소 위치를 옮기는 것도 시민들의 불평과 관리의 편리함 때문도 있지만, 그들의 불법무기를 수거하는 목적이 더욱 컸을 것이다. 나이지리아 갱들이 쓸 수도 없는 외계인 무기를 계속 수집하는 것에서 인간들의 원래 목적이 뭔지 알 수 있다. 이것을 사용하도록 만들기 위해 정부와 갱은 '의학실험'과 '미신(외계인 고기를 먹음)'이라는 상반된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주인공 비커스가 외계인화되기 이전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의학실험과 미신은 별 차이가 없음이 증명된다. 이것은 합법적 정부나 불법 갱이나 인간이 만든 조직의 목표는 '더욱 강력한 폭력기구를 만든다'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두 조직이 외계인을 다루는 방법이 폭력적이라는 데서 그것이 증명된다.


한국의 불량주거지(달동네) 재개발을 떠올리게 하는 두 조직의 행동은 일반 대중에게 잘 노출되지 않는다. 처음 정부측 사람이었던 비커스도 '무기는 안된다'라고 하면서도 실제 법과 규정을 어기면서 이들이 주거지 이전을 폭력적으로 합법화시킨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폭력적인' 무기가 아니라 외계인의 '합법적인' 서명이고, 이에 반발하는 외계인은 단순한 폭도로만 보일 뿐이다. 나이지리아 갱들은 보이지 않기에 불법 거래를 일삼고 외계인을 죽인다.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조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외계인화된 비커스가 보는 프런들의 실상은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다. 즉, 비커스는 중산층에서 빈민층으로 계급이 떨어지면서 그들이 처한 현실이 보이게 된다. MNU 본부 지하에선 불법 생체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갱들은 외계인의 고기를 먹고 있었다. 외계인은 먹을 것이 부족해 타이어를 뜯고 있었고, 이들에게도 부모자식간의 정이 있음을 알게 된다. (외계인의 알을 화염방사기로 태우던 비커스에겐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언론은 그를 외계인과 몸을 섞은 더러운 짐승으로 포장했고, 정부가 아무런 망설임없이 생명을 빼앗고 있음도 체험했다. 결국 비커스는 이 잔인한 현실로부터 탈출하려고 한 외계인 크리스토퍼의 계획을 도와준다.


이 오락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명료하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질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디스트릭트10의 하얀 천막은 더 좋은 환경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9보다 비좁고 엉망인 수용소다. 이미 모선이 요하네스버그에 떠있을 때부터 증명된 것이지만, 무질서하고 멍청해 보이는 외계인들은 실제론 인간보다 높은 기술문명을 구축하고 있었다. '사회'라는 것은 결코 진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언론과 정부가 자꾸 '겉'을 만들어 대중에게 보여줄 뿐이다. '속'은 실제로 겪지 않는 한 알기가 어렵다. 설사 안다 하더라도 이해하고 공감하는 건 더욱 어렵다. 판자촌의 무자비한 철거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해도, 판자촌 재개발에 내 이익이 걸려있다면 저항하는 철거민은 단순히 '돈을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자본가보다 더한 빨갱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디스트릭트9의 화면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결국 뉴스화면이 보여주는 건 '사실'일지 몰라도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디스트릭트9에서 뉴스화면으로 보여주는 장면만 연결해서 본다면 아마 외계인은 여전히 지저분하고 멍청하고 위험한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상의 영화화면이 중간에 삽입되고 그것이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뉴스화면의 거짓은 증명이 된다.


외계인들이 강력한 무기를 가졌으면서 인간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어떤 네티즌의 영화평을 보면 언론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쉽게 이해가 된다. 어떤 강력한 물리적 힘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들의 계급이 뒤따라주지 못하면 결국 약자로 밖에 남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죽창으로 찌른다해도 일용직 노동자고 세입자라면 그들은 영원히 약자가 되는 것이다. 언론은 이들의 저항을 불법적으로 폭력적인 것으로 포장하고 대중은 약자를 약자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인간의 숫자가 많아서 강력한 무기를 가진 외계인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계급이 낮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결국 크리스토퍼는 모선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이들이 원래 있어야할 계급으로 올라갔음을 보여준다. 계급 상승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든다. 모선으로 올라가기 위해 20년을 기다렸고 많은 동족의 죽음을 감수해야 했다. 크리스토퍼가 모선에 안착해 계급상승의 꿈을 이뤘다면, 모선은 계급 그 자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영화의 허구가 드러난다. 태어날 때부터 빈민층으로 태어난 사람은 올라갈 계급도 없다는 것 말이다. 외계인은 빈민층으로 설정된 것 뿐이지 빈민층이 아니었다. 이것을 과연 우리네 철거민들과 동등하게 대입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촛불집회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중산층의 소비자운동이나 마찬가지였던 촛불집회는 영화의 외계인과는 설정부터가 다르다. 아마도 언론의 역할을 보고 촛불집회를 떠올린 모양인데, 아직 한국인들이 자신의 계급을 직시하지 못하고 계급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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